sweet home

아내의 생일

묵향의 이야기 2007. 3. 23. 08:17
 

어제는 늦둥이 공주 현주와 오랜만에 이천 설봉산을 다녀왔습니다. 실은 모임의 선배와 벗들이 현주를 이끌어 주었었죠.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오늘 생일인 아내의 케익 촛불 끄기도 있었고, 많지 않은 돈이지만 조금씩 매월 추렴하여 어려운 학생을 돕자던 등산 모임의 회장님의 말씀에 머리를 마주대고 학생 한명을 선정했죠.


새벽 3시도 되지 않아서 잠에서 깼습니다. 잠을 더 청하려 했지만,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들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이들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커피우유 마셨으면 좋겠다는 큰 딸의 청에 편의점으로 향했습니다.


우유를 사려고 둘러보니 햇반과 즉석미역국이 눈에 띄었습니다. 괜한 장난기로 인해 햇반 두개와 미역국 하나 그리고 우유 두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설명서에 쓰인데로 냄비에 물 세 컵을 붓고 건조 미역 덩어리 2개를 넣고 팔팔 끓이고는,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운 뒤 공기에 담아 밥과 국을 랩으로 씌워 식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수저 한 세트와 함께... 아내의 생일상을 차려 놓았죠. 내 생애 두 번째입니다.


십년 전쯤인가? 아내의 생일날 그때도 생일상을 차려 놓고 출근했었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 "따끈따끈한 미역국" 이라고

하얀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려 생일상을 차려 놓았던 것입니다.


출근길 길목에 있는 주유소를 들렸습니다. 몇달 전 쯤 이른 새벽에 그 주유소에서는 처음 보는 어린 남자 종업원이 짠뜩 찌푸린 얼굴로 손님을 맞이 했었습니다. 몇 번인가 어둠이 가시기 전에 들린 그 주유소에서는 항상 그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가와서는 휘발유는 채워주되 손님의 기분은 앗아가곤 했습니다. 낮에는 얼굴을 볼 수 없는 그는 밤에만 근무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그의 가벼워진 발걸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가벼운 농담까지 던졌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세상을 향해 증오의 눈빛을 보내는 듯 하던 그 친구의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어져 있었습니다. 세상사에 잔뜩 찌푸려 있던 그에게도 자그마한 행복이 깃들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반쯤 대머리인 젊은 주유소 주인과 그 종업원이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주유소 사무실의 불빛이 오늘은 유난히도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젊은 사장의 따스한 마음이 꽁꽁 얼어 붙었던 그 종업원의 마음을 녹여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잠을 놓쳐 버렸지만,

자그마한 미소를 내 가슴에 담게 되었던 행복한 날의 아침입니다.


2007.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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