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그리던 해남 ‘땅끝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북적이는 인파에 치여서 고적한 감상에 젖지는 못했지만,
현주를 어깨에 무등 태우고 많은 계단을 올라 다다른
땅끝 전망대의 바람결이 잠시 내 가슴을 비워주어 좋았습니다.
얼마 전 농원 잔디밭에서 온 가족이 모여 삼겹살을 구어 먹다가
여동생의 제안에 갑작스레 떠나간 2박 3일의 여행이었습니다.
대학생인 처남과 큰조카 두 명이 빠진 발리 여행팀 16명이 일행이었죠.
처가 처제식구 그리고 누나 여동생 가족 모두 아우러져
25인승 현주 유치원 버스에 우리 모두의 행복을 실었죠.
아이들 학교 때문에 2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서해안고속도로로
남쪽을 향해 내려가 목포를 경유 해남에 들러, 방송을 타 유명해진
한정식 집 천일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완도를 가는 길목에 남쪽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 땅끝 바닷가 모텔에 11시쯤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분수불꽃 폭죽을 터뜨리며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땅 끝 마을 항구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 때문에 10시쯤에야 보길도 행
페리 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땅 끝 표석과 전망대를
다녀왔고 급히 아침식사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실망이었습니다.
유배생활과 청빈한 삶 속에서 자연에 묻혀 아름다운 서사시를
안겨주었으리라 생각했던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 세연정에
다다르니 작지만 아름다운 물줄기와 바위들의 자연의 향기를
커다란 정자가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어부들의 삶과 하나가 되어 읊어졌으리라 생각했던 어부사시사는
배부른 유배(?) 객의 사치스런 치장물에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몇 군데 둘러볼 곳이라는 곳도 멀리 온 객의 마음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자갈바닷가를 들러 백사장 해변 가에 들렀다가 버스가 모래에 빠져
한동안 고생을 시키기도 했죠.
보길도 선착장에서 땅 끝 마을 쪽이 아닌 완도 행 배에 버스가 실렸습니다.
완도 화흥포 항에 도착하니 가까운 곳에 드라마 '해신'의 청해진
포구 촬영세트장이 있었습니다. 사람물결에 치이고 치여 눈도장만 찍고
급히 완도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숙소를 서둘러 잡기 위해서....
몇 가족 많은 식구들이다 보니 회 한 접시 먹는데도 이런 말 저런 말
많았습니다. 중간에서 맏며느리 맏딸의 역할을 하며, 여러 사람들
분위기를 맞추려 애쓰는 아내의 모습이 예뻤습니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서둘러 완도 시내를 빠져 나와 해남으로 향하니
얼마가지 않아 해변 도로에서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청해진' 섬이
보였습니다. 아직 발굴 중이라 달리는 버스 창을 통해 그 옛날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 길을 따라 북으로 잠시 향하니, 해신 촬영장 표시가 있었습니다.
중국 '신라방' 촬영장 세트였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해남 쪽으로 가다가 강진 방향으로 길을 갈아타고 보성으로 향했습니다.
영화 및 드라마 촬영지였던 녹차 밭은 쏟아지는 차량과 사람 물결로
인산인해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의 붙어있는 다른 곳은 그나마 여유
있었지만, 사람 물결을 헤집고 그곳으로 가족을 이끌었습니다.
커다란 전나무 숲을 지나 다다르니, 사진에 보아오던 계단식 차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빠져 나와 순천의 낙안읍성으로 향했습니다.
민속촌을 둘러보는 기분이었지만, 몇 백년간 그대로 마을을 보존하면서
아직도 사람들이 실제 살고 있는 곳이기에 나름대로 가 볼만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그곳에 있는 민박집에서 하루 기거할 거라 마음먹으며
일행을 이끌고 서둘러 담양으로 향했습니다.
담양에 도착하여 TV에 소개된 대나무박물관 앞 송죽정이란 식당에 들어서니,
'죽순회' '죽된장국' '죽통밥'의 별미가 담양의 향기를 이끌어주었습니다.
대나무박물관을 둘러 본 뒤 담양 시내에서 좀 떨어진 노쇄원이란 곳을
들렸습니다. 수려한 계곡에 정자가 있는 곳이라 아늑하기는 했지만,
바쁜 일정을 쪼개어 들린 곳이라 모두들 실망하는 눈빛을 띄었습니다.
이미 서울을 향해 떠날 시간은 지났지만, 담양의 대나무 숲도 아니
갈 수 없기에 담양 시내로 다시 돌아와 죽녹원이란 곳을 들렸습니다.
온통 대나무로 덮혀 있는 작은 산에 오솔길 산책로를 가꾸어 놓은
곳이었습니다. 바쁜 마음도 여유를 안게 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곳 하천 건너편에는 VJ 특공대에 나왔다는 2,500원짜리 국수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지만, 늦은 시간이었던 이유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공룡시대 때부터 생존해 왔다는 커다란 나무로 가로수가 심어진
길고 긴 담양 길을 따라 나오다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아내 가족 나의 가족 모두 어우러져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지만, 몇 가족의 대장 노릇을 해야 했기에
이미 깜깜해진 고속도로에 오르니 피로가 밀려 왔습니다.
그러나 나의 아이들 그리고 조카들에게 삶의 향기를 남겨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내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렀습니다.
이것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었겠죠.
아래 자동차를 타고 있는 아바타 아기의 모습처럼
행복 가득 안았던 여행이었습니다.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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