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있어요. 봄비 치고 제법 많은 빗물이 땅을 적시고 있어요. 아마도 봄의 꽃들이 좀더 일찍 만개했다면, 오늘 내리는 빗물은 내 마음의 눈물이 되고 말았을 거예요. 겨우내 기다리던 화사한 꽃잎들을 오늘 비가 무참히도 땅 위에 떨구고 말았을 테니까요.
어제는 슬픈 날이었어요. 10년 동안 미국에 가 있던 고등학교 친구가 S전자의 상무가 되어서 돌아와, 삼겹살에 쏘주 한 잔 함께 걸쳐 거든요. 친구가 대기업의 별을 달게 된 것을 왜 슬퍼하냐고요? 물론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잔을 부딪쳤죠. 그렇지만 늦은 밤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취한 눈을 크게 뜨고 조명불에 비춘 한강물을 바라보니, 강물이 역류해 가더군요. 30년 전으로.....
도토리 키재기였죠. 그 친구와 나는 번호도 앞 뒤 번호였고, 컨닝 쪽지도 서로 주고받고, 살던 곳도 가까운 곳이기에 함께 2번 버스에 시달렸고, 내 방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남자들의 은밀한 장난을 치기도 했고...... 한 때는 내가 600명 중에 8번째로 앞서 나가기도 했건만, 이탈리아 피렌체 공항에서 내 얼굴을 붉게 만들었던 그런 산업 일꾼으로 이제는 자신의 자리를 우뚝 세우고 있는 그 친구 모습에 나를 빗대어 보니, 슬픈 비가 내 가슴에 쏟아 내리고 말았어요. 어느 날인가부터 정지되어 버린 내 삶의 발걸음에 내 가족의 한 기둥으로 존재한다는 가치 이외에 그저 소비형 인간이 되어 버린 내 모습이 슬퍼지기만 했어요. 기억나나요? ‘생의 길목에서’ 란 낙서에서 “나 주검이 된다 할지라도 풀 한 포기 거름조차 되지 못할 삶. 세상을 향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던 나의 고백!
아마도 그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성탄절 전 날 몇 놈들이 모여서 낱개 담배 사다가 각자 입에 물고 불을 붙였을 때, 그 친구는 정말 못 피워서 콜록콜록! 나는 못 피우는 척 하느라 콜록콜록!
그래도 내게는 가끔 기쁜 일도 있답니다. 지난 2월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장이었죠. 행사장의 높은 연단 위에서 쥐뿔도 안 되는 장학금을 준다며 폼 잡고 있다가 식이 끝난 후 내려오니, 어떤 여자 선생님이 다가 오더군요. 아무개라며 자신을 소개한 뒤, “꼭 한 번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며 말을 건네더군요. 내심 행복했어요. 많은 망설임 끝에 펼쳤던 그 책에 담긴 나의 마음을 진정 읽어 주는 분도 있다는 그런 자아도취의 행복이었죠. 은행 지점장실로의 이끄는 예우는 진정 내 마음에서 거절하지만, 마음으로 내 마음을 읽어 주는 그 눈빛에는 어쩔 수 없이 행복해진답니다.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된 칭찬이었어요. 60 초로의 어른으로부터 두 번을 읽었다는 말씀, 어느 구절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또 다른 분의 이야기들을 귀에 담게 될 때도 기쁜 마음이 가득 피어 올랐었지만, 그 날도 또 다시 굳이 찿아 와 인사를 건네는 그 분이 내게 기쁨을 건네 주었던 날이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낙서를 드러내며 다른 이에게 내 속내를 보이는 것을 보니, 나 자신이 손가락질하던 그런 인간으로 내 모습이 비춰지기에 또다시 슬퍼지네요.
4월 둘째 토요일 비오던 날 밤
꽃향기에 취해, 술내음에 취해~
'방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0) | 2007.03.23 |
---|---|
장마 첫날 아침에 (0) | 2007.03.23 |
가을의 바람 (0) | 2007.03.22 |
봄날의 소망 (0) | 2007.03.22 |
자살하고 있는 중인가 보다 (0) | 2007.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