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동녘 하늘을 바라보며

묵향의 이야기 2007. 3. 23. 08:23
 

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지난밤 11시쯤에 잠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새벽 2시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현주가 어지럽혀 놓은 내 방과 거실을 정리하고는

또다시 잠을 청해 봤지만 이룰 수 없어서,

월요일에는 꼭 우송해야만 하는 문서를 마무리 짓기 위해

3시가 갓 넘었을 때 농장 사무실로 달려 왔습니다.


몇 시간 담배연기를 벗 삼고

머리를 쥐어 짜내며 서류를 완성시켰더니

이제 동이 터오고 닭의 꼬끼오 소리가 들립니다.


짙게 드리운 어둠을 뚫고 달리다가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치면서,

또다시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아니 슬픔 보다는 심연에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음, 공허, 세월의 무상, 알 수 없는 그리움

메말라 가는 영혼, 이별의 느낌......

무엇이라 딱히 말할 수 없는 그런 암울한 마음이었습니다.


이 계절을 찬미하여도 모자랄 그런 가을이지만,

그리고 사무실에 있던 날을 손꼽을 정도로 놀러 다닌 9월이었지만,

왠지 조바심이 내 마음에 밀려오는 것은

뒤로 미루었던 많은 일들 때문도 아니고

세월의 덧없음 때문도 아닌 것 같습니다.


뜨거운 햇살이 싫어서 그늘을 찾았다가

이제는 그늘에 익숙해져서

태양 아래로 나가지 못하게 된 우매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같을 진데

때로는 행복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고독에 저미어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은

세상사가 나를 울고 웃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 내게 희비를 안겨주는 것이겠지요.


함께 가자는 청에 이끌려 떠나야 할

11월 페낭의 골프 그리고 음주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천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속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자 떠나려 하는

10일간의 단식원에 대한 기대가 앞서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을 다스려 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제는 '묵향'의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이미 색이 짙게 드리워진 내 영혼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10일간의 일정도 여행의 하나가 될 것이기에

새로운 기대감으로 나의 빈 가슴을 채우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밤은 지나고 아침이 찾아 왔듯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내게 밀려 왔던

알 수 없는 그 혼돈도

이 햇살에 밀려 잠시 뒷전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알찬 새 날을 위해

크게 숨을 내쉬어 봅니다.

그리고 동쪽 큰 창 너머 밝아오는

가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2006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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