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지난밤 11시쯤에 잠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새벽 2시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현주가 어지럽혀 놓은 내 방과 거실을 정리하고는
또다시 잠을 청해 봤지만 이룰 수 없어서,
월요일에는 꼭 우송해야만 하는 문서를 마무리 짓기 위해
3시가 갓 넘었을 때 농장 사무실로 달려 왔습니다.
몇 시간 담배연기를 벗 삼고
머리를 쥐어 짜내며 서류를 완성시켰더니
이제 동이 터오고 닭의 꼬끼오 소리가 들립니다.
짙게 드리운 어둠을 뚫고 달리다가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치면서,
또다시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아니 슬픔 보다는 심연에 빠져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음, 공허, 세월의 무상, 알 수 없는 그리움
메말라 가는 영혼, 이별의 느낌......
무엇이라 딱히 말할 수 없는 그런 암울한 마음이었습니다.
이 계절을 찬미하여도 모자랄 그런 가을이지만,
그리고 사무실에 있던 날을 손꼽을 정도로 놀러 다닌 9월이었지만,
왠지 조바심이 내 마음에 밀려오는 것은
뒤로 미루었던 많은 일들 때문도 아니고
세월의 덧없음 때문도 아닌 것 같습니다.
뜨거운 햇살이 싫어서 그늘을 찾았다가
이제는 그늘에 익숙해져서
태양 아래로 나가지 못하게 된 우매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같을 진데
때로는 행복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고독에 저미어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은
세상사가 나를 울고 웃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이 내게 희비를 안겨주는 것이겠지요.
함께 가자는 청에 이끌려 떠나야 할
11월 페낭의 골프 그리고 음주 여행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천하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속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자 떠나려 하는
10일간의 단식원에 대한 기대가 앞서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을 다스려 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이제는 '묵향'의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이미 색이 짙게 드리워진 내 영혼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10일간의 일정도 여행의 하나가 될 것이기에
새로운 기대감으로 나의 빈 가슴을 채우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밤은 지나고 아침이 찾아 왔듯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내게 밀려 왔던
알 수 없는 그 혼돈도
이 햇살에 밀려 잠시 뒷전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알찬 새 날을 위해
크게 숨을 내쉬어 봅니다.
그리고 동쪽 큰 창 너머 밝아오는
가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2006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