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140

물까치와의 전쟁

지난주부터 여기 하늘아래정원의 집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려 몇 걸음 옮기려 하면, 여지없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뒤에서 새 한 마리가 내 머리를 가까이 스치고 날아간다. 날이 밝아오면 내가 출근하기를 기다리며 어느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잔디밭에 나가 망중한을 즐기려 현관문을 나서면 또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내 머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든다. 날카로운 부리에 상처를 입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이 더위에도 긴 팔 웃옷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승마용 헬멧을 뒤집어 쓴 채 산책을 해야 한다. 잠시 차에 물건을 꺼내려 갈 때는 빗자루를 하늘 향해 흔들며 나서야 하니, 이곳이 내 집인가 새들의 집인가? 결국 참다못해 나는 그제 반경 30미터에 있는 나무들을 샅샅이 훑었다. 이곳은 거의 30..

프리즘 2021.07.29

겨울 속 삶

다음 달 말이면 장학회를 만든 지 23년째가 된다. 설립할 때는 무척 높은 이자율이었기에 지역 내의 이삼십 명의 중고교생들에게는 많지 않은 장학금이나마 여유 있게 지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턱없이 부족하여 해마다 장학회 이자보다 더 많이 나의 통장에서 꺼내어 보태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장학금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살펴보면 미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때가 많다. 일주일 전에 봤던 80대 조부모와 살고 있는 초교 6학년 소녀의 이야기도 내 양심을 들쑤셔 놓았고, 십이 년 전 네팔 트레킹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산골소년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내 눈에 아른거리고, 나의 자식들에게 꼭 읽어보라며 건네주는 어려운 아이들의 삶의 애환 고통 좌절은 메마른 눈물일지라도 내 얼굴을 적시곤 했다. 지난 주 화요일에는 ..

프리즘 2021.07.29

제삿밥

제삿밥이 되고 말았구나. 어젯밤 아내가 사골국물에 잘게 짓이긴 고기와 쌀밥을 넣어 거의 죽처럼 만들었던 먹거리를 그의 앞에 미처 내놓고 못하고 떠나보내고 말았다. 작년 말부터 먼 곳 허공을 향해 울부짖던 철창 속 진돗개가 며칠 전부터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힘없는 외침을 토해냈었다. 마지막 고별인사로 쌀죽을 준비했건만! 강아지 적에 이별했던 엄마가 그리웠던 것인가? 곁에 아무도 없이 삶과 작별해야 하는 설움이었던가? 평생을 철창 속에 갇혀 살았던 것에 대한 한탄이었나? 나의 어머니가 임종하신 지 19년이 흘렀고, 그 전에 강아지로 나의 곁에 머물렀던 이름 없는 백구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떠나갈 것을 알면서도 곁을 지켜줄 수 없었다. 더 이상 생명을 얻지 말라! 사랑받는 강아지도 결국 홀로 이별을 맞이해야..

프리즘 2021.07.29

산다는 것

열흘 넘게 남쪽 나라에 여행을 다녀왔더니 고여 있는 작은 연못이 꽁꽁 얼어 붙어버렸네요. 얼음으로 하늘과 단절된 물속에는 시냇물 물고기와 붕어들이 살고 있었죠. 얼음과 뒤엉켜 있는 홀쭉하고 기다란 생명체들! 이미 생명체는 아니었죠. 혹시 녹이면 살아날까? 얼음은 세상과 그들을 차단시켰던 것입니다. 세상의 숨결은 그들에게 전해질 수 없었던 것이죠. 얼음은 그들을 그렇게 질식해 죽여 갔던 것입니다. 세월호의 선실과 제천의 욕실 속 그 사람들처럼!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한 마음에 두꺼운 벽을 애써 뚫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움직임은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유희를 위해 그들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곳으로 나도 따라 가겠죠. 나이라는 것은 흐르는 물길에 선을 긋는 것이겠죠. 의미 없는 숫..

프리즘 2021.07.29

갑과 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녹녹치 않다. ‘갑’이건 ‘을’이건 산다는 것은 버거운 것인가? 번지 점프하는 이의 밧줄과 사람과의 관계인가? 하지만, 줄은 끊어지면 남은 것들이 존재하겠지. 월세보증금의 절반을 까먹은 이에게 계약해지와 소송 예고 안내를 보내야만 한다. 만약 그가 낼 돈도 갈 곳도 없다면, 짊어질 수 없는 짐들과 함께 길바닥에 결국 내동댕이쳐져야 한다. 그렇다고 한없이 그를 매달고 있을 수 없다. 나는 물 위에 떠 있다. 두 팔을 내 젓지 않으면 나는 떠 있을 수 없다. 내 손에 갈라지는 물살이 아플까봐 팔을 뻗지 않으면 나는 가라앉는다. 이런 것들이 고통이라면 차라리 물속에 내 모습 감추면 무념 무상 무통의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 2017. 08. 29.

프리즘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