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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밥

제삿밥이 되고 말았구나. 어젯밤 아내가 사골국물에 잘게 짓이긴 고기와 쌀밥을 넣어 거의 죽처럼 만들었던 먹거리를 그의 앞에 미처 내놓고 못하고 떠나보내고 말았다. 작년 말부터 먼 곳 허공을 향해 울부짖던 철창 속 진돗개가 며칠 전부터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힘없는 외침을 토해냈었다. 마지막 고별인사로 쌀죽을 준비했건만! 강아지 적에 이별했던 엄마가 그리웠던 것인가? 곁에 아무도 없이 삶과 작별해야 하는 설움이었던가? 평생을 철창 속에 갇혀 살았던 것에 대한 한탄이었나? 나의 어머니가 임종하신 지 19년이 흘렀고, 그 전에 강아지로 나의 곁에 머물렀던 이름 없는 백구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떠나갈 것을 알면서도 곁을 지켜줄 수 없었다. 더 이상 생명을 얻지 말라! 사랑받는 강아지도 결국 홀로 이별을 맞이해야..

프리즘 2021.07.29

아내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던 한 남자가 어느 날 그녀에게 청혼을 했죠. “내 안의 태양이 되어 주소서! 그대가 내 안의 태양이 되어 준다면, 나는 평생 그 해를 바라보며 살겠소!” 하지만 햇님을 볼 수 없는 밤이면 남자는 달을 바라 볼 것이라며, 그녀는 그를 외면하기만 하였죠. 그 이야기에 그 남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안의 해로 떠받들 것이니, 결코 안의 해는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안의 해가 되어 주소서!” 그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외쳐댔답니다. “안의 해가 되어 주소서!” “안의 해” “안 해” “안해” 결국 그는 그녀를 ‘아내’라 부르게 되었지요. 그래서 사랑하는 안 사람을 아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2018년 1월 5일

sweet home 2021.07.29

산다는 것

열흘 넘게 남쪽 나라에 여행을 다녀왔더니 고여 있는 작은 연못이 꽁꽁 얼어 붙어버렸네요. 얼음으로 하늘과 단절된 물속에는 시냇물 물고기와 붕어들이 살고 있었죠. 얼음과 뒤엉켜 있는 홀쭉하고 기다란 생명체들! 이미 생명체는 아니었죠. 혹시 녹이면 살아날까? 얼음은 세상과 그들을 차단시켰던 것입니다. 세상의 숨결은 그들에게 전해질 수 없었던 것이죠. 얼음은 그들을 그렇게 질식해 죽여 갔던 것입니다. 세월호의 선실과 제천의 욕실 속 그 사람들처럼!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한 마음에 두꺼운 벽을 애써 뚫었습니다. 어디에서도 움직임은 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유희를 위해 그들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곳으로 나도 따라 가겠죠. 나이라는 것은 흐르는 물길에 선을 긋는 것이겠죠. 의미 없는 숫..

프리즘 2021.07.29

갑과 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녹녹치 않다. ‘갑’이건 ‘을’이건 산다는 것은 버거운 것인가? 번지 점프하는 이의 밧줄과 사람과의 관계인가? 하지만, 줄은 끊어지면 남은 것들이 존재하겠지. 월세보증금의 절반을 까먹은 이에게 계약해지와 소송 예고 안내를 보내야만 한다. 만약 그가 낼 돈도 갈 곳도 없다면, 짊어질 수 없는 짐들과 함께 길바닥에 결국 내동댕이쳐져야 한다. 그렇다고 한없이 그를 매달고 있을 수 없다. 나는 물 위에 떠 있다. 두 팔을 내 젓지 않으면 나는 떠 있을 수 없다. 내 손에 갈라지는 물살이 아플까봐 팔을 뻗지 않으면 나는 가라앉는다. 이런 것들이 고통이라면 차라리 물속에 내 모습 감추면 무념 무상 무통의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 2017. 08. 29.

프리즘 2021.07.29

사탕인가? 독약인가?

어둠이 걷히지 않은 언덕을 오르다가 큰일을 낼 뻔했다. 사람을 칠 뻔했다. 옷가지가 널려진 줄 알고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속도를 줄여 살펴보니 도로 한 가운데 누어있었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중앙선에 차를 세워 놓은 채 길 밖으로 부축해 가려하니 욕설을 퍼 붓는다. “야~ **년아!” 젊은 청년의 울부짖음이다. 밤새도록 술을 마신 모양이다. 아~ 사랑이여! 그대는 달콤한 사탕인가 쓰디쓴 독약인가? 2017년 9월 15일 새벽

프리즘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