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하고 싶을 뿐이다. 백수가 된지 벌써 16년째... 밤낮으로 채널을 고정시켰다. KBS 클래식 93.1 주인 잃은 광주 농원을 비워둘 수 없어, 방 한칸을 사무실로 꾸며 놓고 일상의 터전으로 삼은 지 9년... 저주받은 곳인가? 전파가 잡히지 않는다. 약속이 있어 일찍 차를 몰고 다닐 때 서산 너머 석양 물들어 갈 때 가슴 깊이 파고드.. 프리즘 2010.04.09
어제 즐거웠고 고마웠다. 연극이 끝난 뒤 텅빈 무대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감동과 즐거움이 컸기에 빈자리는 더욱 허전한 모양이다. 막상 초대를 했지만 먼곳에서 오는 친구들이 기쁜 추억을 안고 돌아가지 않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이것저것 준비했을지라도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친구들이 알아서 숯불 붙이고 채소 .. 프리즘 2009.10.25
파리 한마리 파리 한마리가 욍윙 내 공간을 헤집고 날아 다니더니 바닥에 떨어져 허공을 향해 발버둥질치고 있다. 비록 동네 집들로 둘러 싸인 곳이지만, 이곳만은 별천지 숲 속에 싸여 있다. 밭일 하랴 앵두 살구 열매들을 따랴 늦가을 낙엽을 쓸어 모으랴 눈 오는 날 허리 휘어지도록 빗질하랴... 관리인 노부부는.. 프리즘 2009.06.27
제주 올레 첫번째 이야기 하염없이 이리저리 흘러가는 바람결처럼 걷고 싶었다. 남도 길을... 호젓한 어느 섬 해변가를... 그저 마음속에서만 그렇게 걷기를 몇 년! 우연히 알게 된 ‘제주 올레’! 다리의 깁스 때문에 결국 한 달이 늦어져, 이제야 나는 제주 올레 제 1코스 출발점 시흥초교 정문 앞에 서 있다. 6시 10분! 이른 시간.. 프리즘 2009.05.23
봄날의 허무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목련은 꽃을 피운다. 두꺼운 표피에 둘려 싸인 꽃망울이 앙상한 가지 끝마다 숱하게 매달려 봄을 기다린다. 봄까지 미처 기다리지 못해 하얀 눈이 내릴 때면 목련의 가지마다 흰꽃이 만발한다. 겨우내내 잿빛이었던 길마다 화사한 벚꽃이 만개해 있다. 언제나 서울보다 한발 늦게.. 프리즘 2009.04.11
피가로의 결혼 3년 만에 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를 찾았다. 화재 이후 2년 만의 재개관 기념 작품으로 올려진 ‘피가로의 결혼‘ 첫날 공연에 오래 기다리던 이를 만나는 설렘을 안고 나섰다. 이윽고 막은 오르고, 낯익은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 울러 퍼졌다.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 피가로....” 다소.. 프리즘 2009.03.08
비행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유리창에 무언가 강하게 부딪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그러하듯 새들이 사랑의 숨박꼭질을 하던 중 한쪽 벽면 전체를 가로 막고 있는 투명한 벽을 뚫고 날아드려다 유리창에 부딪기는 비행사고이거니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혼탁해져 버린 내 머리속을 환기시켜 .. 프리즘 2009.02.20
가을날 안개 발갛게 달아오른 새색시가 부끄러워 홑이불 끌어 올리듯, 단풍에 물들어가는 가을의 산야는 나직한 안개를 덮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 애써 누르며 새신랑 각시 곁으로 다가서듯, 암울하기만 한 세상을 피해 나는 그저 안개 속으로 달려간다. 하얀 천 속 신랑 각시 속살속살 히죽거리며 하나가 되어가.. 프리즘 2008.12.07
가을날 아침 출근길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세상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을 타고 내 마음은 하늘 높이 올라가 풍선처럼 터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애써 억누르며 내달리니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오는 안개 속으로 이내 내 몸을 감추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초가을의 설램에서 늦가을.. 프리즘 2008.12.07
맞이할 때와 떠나갈 때 오늘 저녁도 서편 하늘에는 은하수의 숱한 별들을 담으려는 듯 초승달이 어둠을 바다 삼아 쪽배되어 떠 있다. 지난 이월 구정을 사흘 앞두고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무실을 향해 고속도로를 내달리고 있었다. 아미같이 가냘픈 달님이 어두운 하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다. 무심결에 바라본 그 쪽.. 프리즘 2008.12.07